중국도자실(원〜명시대)
원(元)시대(1271〜1368)는 송(宋)시대에 이어서 여러가지 도자기를 생산했지만, 경덕진요(景徳鎮窯)는 청화자기(青花磁器)의 기술을 완성시키는 것에 의해 중국에 있어서 도자기 생산의 수석(首座)의 지위를 확립했다. 청화(青花)는 백자의 바탕에 코발트 안료로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투명유(透明釉)를 입혀 구워낸 것으로, 일본에서는 소메쯔케(染付)라고 부르고 있다. 원(元)시대의 청화자기에는 대형 그릇에 무늬를 빈틈없이 그린 것이 많고, 선명하고 아름다우며 강함이 넘쳐나는 것이 중근동 (中近東)등에 활발하게 수출되었다. 또한, 코발트 대신에 산화동(酸化銅)을 안료로 사용한 유리홍(釉裏紅)과 그것들 안료를 유약에 녹힌 유리유(瑠璃釉)와 홍유(紅釉)도 보이며, 추부명(枢府銘)을 동반한 백자와 함께 이 시대를 특징 짓고 있다. 경덕진요(景徳鎮窯) 이외에도 송시대에 이어 용천요(龍泉窯)가 활발히 대량의 청자를 생산하고 해외에도 수출했다.
명(明)시대(1368〜1644)로 들어오자, 경덕진에 어기창(御器厰)이 설치되고, 청화자기는 세련됨을 더해갔다. 백자의 태토는 정선되어 코발트의 발색은 산뜻하고, 무늬는 세련되어 유려(流麗)하기 짝이 없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또한, 선덕(宣徳)년간 이후, 관요(官窯)제품에는 연관명(年款銘)을 써 넣는다. 성화(成化)연간에 이르면, 청화자기의 정점(頂点)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우아하고 세련된 주옥(珠玉)의 정품(精品)이 생산되었다. 유상다채 (釉上多彩)의 기법을 도입한 성화두채(成化豆彩)기법도 나타난다. 명(明)시대후반 가정(嘉靖)연간이 되면 청화는 시들어지고, 대신에 유상다채 (釉上多彩)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오채(五彩)와 잡채(雑彩), 게다가 금채(金彩)를 가미시킨 금란수(金襴手)등 호사스러운(豪奢)제품이 관요(官窯), 민요(民窯)를 통해서 만들어졌다. 만력(万暦)연간에는 만력적회(万暦赤絵)를 생산해냈지만, 명(明)의 관요는 이 시기에 종언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