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자실
일본도자는 우선, 세계최고의 토기라고 불리우는 죠몬토기 (縄文土器) 로 부터 시작되고, 야요이토기(弥生土器), 그리고 고훈시대 (古墳時代, 4世紀 〜7世紀) 의 하지키(土師器)와 하니와(埴輪)로 토기문화의 발전을 이룬다. 5세기에는 한반도에서 전해온 새로운 도자제작기술에 의해 스에키(須恵器) 가 탄생하고, 자연유(自然釉)의 출현을 보았다. 아스카・나라(飛鳥・奈良) 시대(538〜794)에는 중국과 한반도의 도기의 영향을 받아 녹유도기(緑釉陶器)와 나라삼채(奈良三彩)가 등장하고, 게다가 헤이안시대 (平安時代, 794〜1185) 가 되면 아이치현(愛知県)의 나사게요(猿投窯)에서 도기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의 말부터 야키시메(焼締:유약을 바르지 않고 고온에서 구운것) 도기의 대량 생산이 토코나메(常滑)・아쯔미(渥美)를 시작해, 에치젠(越前)・시가락키(信楽)・탄바(丹波)・비젠(備前)등 각지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카마쿠라・무로마치시대(鎌倉・室町, 1185〜1568)에는 카라모노 (唐物:중국 수입품) 존중의 가치관을 배경으로 세또・미노(瀬戸・美濃)지방에서는 활발하게 중국도자의 모조품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무로마치시대후기부터 「다도(茶の湯)」에 있어서 독자의 미의식이 첨가되고, 국산도기의 지위가 비약적으로 향상했다. 그 결과, 모모야마시대(桃山時代, 1568〜1615)에는 센노리큐(千利休, 1522〜91)의 지도에 의해 쵸우지로(長次郎)의 락쿠 (楽)茶碗 과, 미노(美濃)의 키세또(黄瀬戸)・세또구로(瀬戸黒)・시노(志野)・오리베(織部)의 등장을 시작으로, 備前・信楽・이가(伊賀)・丹波・카라쯔(唐津)등에서도 차도구(茶陶:다도에 사용되는 도자의 총칭)를 중심으로 한 생산활동이 활기를 띈다. 게다가, 에도시대(江戸時代, 1615〜1868)의 교토(京都)에서는 닌세(仁清)와 켄잔(乾山, 1663〜1743)을 대표로 하는 이로에 (色繪: 유약 밑이나 위에 안료로 그림을 그려 저화도로 번조한 것)도기 중심의 우아한 교야키(京焼)가 일세를 풍미(風靡) 했다.
한반도의 도공(陶工)의 기술을 기초로 해서, 1610년대에 큐슈(九州)의 아리타(有田) 일대에서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자기가 만들어졌다. 당초부터 중국의 소메쯔케(染付:청화백자)를 지향한 아리타(有田)의 자기는 그 후, 이로에 (色繪)의 기법도 흡수했다. 1980년대부터의 고고학발굴의 성과에 의하면 코쿠타니(古九谷)도 아리타에서 생산되었다는 설이 유력하고, 코쿠타니 양식・카키에몽양식・코이마리양식・나베시마양식(古九谷様式・柿右衛門様式・古伊万里様式・鍋島様式)이라는 현란(絢爛)한 이로에자기(色絵磁器)의 세계가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