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자실(고려시대)
고려시대(918〜1391)의 도자를 대표하는 것은 청자이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10세기초에는 중국・월주요 청자(越州窯青磁)의 기술이 전해져 발전의 기초가 확고해졌다고 생각된다.
12세기전반에는 최성기를 맞이하고, 비취색(翡翠色)으로 빛나는 비색 (翡色) 청자를 완성시켰다. 선화(宣和)5년(1123년), 고려의 수도 개성을 방문한 중국사절단의 일원인 서긍(徐兢)이 저술한 『고려도경(高麗図経)』 에는 청자가 비색(翡色)으로 불리어져 색과 윤택이 각별히 아름답고, 도금과 은제의 그릇보다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또, 12세기중반에는 고려독자의 기법이라고 일컫는 상감(象嵌)청자를 만들어냈다. 성형한 그릇의 덜 마른 표면에 무늬를 음각하고, 거기에 백토・자토(赭土)를 메워 초벌구이 한 후, 청자유약을 입혀 구워 낸 것이다. 청자유약의 아래에 펼쳐지는 흑백상감무늬는 선명하고 아름다운 정취를 가지고 있다. 이것들 비색청자와 상감청자의 우수한 작품은 전라남도 강진(康津), 전라북도 부안(扶安)등에서 주로 생산되었다. 12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이 외에 철안료로 무늬를 그린 철화(鐵畵), 백토로 문양을 그린 퇴화(白堆), 산화동(酸化銅)의 안료로 무늬를 그린 진사(辰砂), 청자의 유약 아래에 철사안료를 바른 철채(鐵彩), 세 종류의 흙을 혼합한 연리(練理)등 여러가지 종류의 청자가 만들어졌다. 또, 조금이지만 백자도 생산되었다.
14세기말경까지 상감청자는 대량으로 생산되었지만, 질적으로는 쇠퇴가 보이고 머지않아 조선시대의 분청(粉青)으로 계승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