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자실 (후한〜송시대)

후한(後漢)시대 (25〜220)에는 분묘(墳墓)에 매장되는 명기(明器)로 녹유(緑釉), 갈유(褐釉)등의 저화도에서 구워진 연유도(鉛釉陶)가 활발하게 생산되었다. 청자의 기술이 처음으로 확립된 것도 이 시기이다.
육조(六朝)시대(220〜589)에 걸쳐서 청자는 서서히 발달하고, 기종 (器種)도 많아진다. 북조(北朝)말기에는 중국 북부에서 백자의 번조가 시작되고, 당(唐)시대(618〜907)에는 형주요(邢州窯)의 백자는 월주요(越州窯)의 청자와 함께 명요(名窯)로서 문헌상에도 나타나고 있다. 후장(厚葬)의 풍습은 더욱더 유행하게 되고, 회도(灰陶)에 채색(彩色)한 가채도(加彩陶)와 호화찬란한 당삼채(唐三彩)가 분묘를 장식했다. 당삼채는 중국도자사상 가장 화려한 것으로, 그 기형(器形), 장식등에는 서아시아의 영향이 농후하게 나타나 있다. 계속해서 오대(五代)부터 북송(北宋)에 걸쳐 월주요 (越州窯) 에서는 정교한 청자를 만들어냈다.
송(宋)시대(960〜1279)는 중국도자사 중에서도 빛나는 황금시대이다. 온갖 도자 제작기술은 완성의 벽에 도달하고, 각지에서 기예를 경쟁했다. 화북(華北)에서는 궁정어용품(宮廷御用品)을 제작한 북송관요(北宋官窯)・여요(汝窯)의 청자와 정요(定窯)의 백자를 정점(頂点)으로 해서 월주요 (耀州窯)의 청자, 자주요(磁州窯)계통의 민간도기(民間陶器)등을 들 수 있다. 1125년 금(金)의 침략을 받은 송 왕실은 남쪽으로 이동하고, 항주 (杭州)에 수도를 두었다. 그곳에서는 새로운 남송(南宋)의 관요청자가 제작되었다. 화남(華南)에서는 용천요(龍泉窯)의 청자, 건요(建窯)・길주요 (吉州窯)의 천목(天目), 경덕진요의 청백자등이 유명하다. 송나라의 자기는 세련된 단정한 기형(器形), 숙성(熟成)된 유조(釉調), 고상하고 우아한 장식등이 조화를 보여 그 높은 예술적 경지로부터 동양도자의 정수(精粋)라고도 불리어지고 있다.